1. 예측 가능한 부모 역할의 중요성
부모는 자녀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의 행동과 태도는 자녀의 삶에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는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한 축을 이루게 됩니다. 자녀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부모와 교감하고, 부모를 통해 세상을 처음 배우게 됩니다. 부모의 반응을 통해 특정 자극의 결과에 대해서 예측하고, 자신에게 맞는 행동을 배우게 됩니다.
이때 부모의 행동과 태도가 예측 가능하고 일관되게 유지되면, 자녀는 수월하게 배움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고 마음에 안정감을 가지게 됩니다. 나아가 자녀의 자기 인식과 정체성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스스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공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안정적인 환경은 자신이 속한 세상과 인간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반면 부모의 행동과 태도가 일관되지 않고 예측하기가 어렵다면, 자녀들은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일한 행동을 했지만 어느 날은 야단을 맞고, 또 다른 날은 칭찬을 들으면 자녀는 이 행동을 다시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집니다. 결국 아이는 이 행동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기를 포기하고 무기력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자신을 능력이 없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폄하하게 되어 우울해지게 됩니다.
2.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연구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이러한 무기력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사고 습관이 훈련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러한 학습 훈련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학습에 관한 연구 중 부정적 강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는 통증과 같은 고통스러운 자극이 주어지면, 그것을 피하는 행동이 강화된다는 개념입니다. 즉, 어떤 충격을 받은 동물은 그 충격을 멈추기 위해 어떤 반응을 하게 됩니다.
부정적 강화 연구들은 개를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개를 큰 상자에 넣고, 그 상자는 뛰어넘을 수 있도록 중간에 칸막이를 뒀습니다. 개에게 충격이 왔을 때, 벽을 뛰어넘어 반대쪽 공간으로 넘어가면 그 충격이 사라지게 설정하였습니다.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충격이 오게 되면 개는 충격이 올 때마다 반대쪽 공간으로 넘어가게 학습됩니다. 보통 대부분의 개들은 충격이 왔을 때 쉽게 벽을 뛰어넘어 안전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실험자들은 그 연구에 다른 집단의 개를 포함시켰습니다. 그 개들은 이전에 다른 실험을 시행하고 왔습니다. 그 선행 실험은 개들이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짧은 간격으로 충격이 가해졌고, 개들의 행동에 상관없이 충격이 왔다 갔다 하게 설정하였습니다. 선행 실험에서 무기력한 태도를 가지고 온 개들은 그 후의 실험에서도 반대편 공간으로 넘어가지 않고 실험자들이 충격을 끌 때까지 거기 서 있거나 누워 있게 됩니다. 건너편으로 뛰어넘기만 하면 쉽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매우 천천히 깨닫거나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미 무기력함이 시작된 개들은 다른 환경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세 집단의 개를 대상으로 두 단계로 나뉘어 실시되었습니다. 첫 단계에서 1번 집단의 개들에게는 시간, 간격, 강도가 일정한 충격을 주고, 스스로 그 충격을 중단할 수 있도록 설정했습니다. 2번 집단의 개들은 스스로 충격을 중단할 수 없도록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2번 집단의 충격은 1번 집단에서와 똑같이 시간, 간격, 강도가 일정했습니다. 1번 집단의 개들과 2번 집단의 개들을 서로 짝지어 충격의 시간과 강도를 똑같이 조절하였습니다. 1번 집단의 개들이 충격을 내버려 두는 시간만큼만 2번 집단의 개들에게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3번 집단은 대조 집단으로 1단계 동안에는 충격을 전혀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뒤에 2단계 실험으로 들어가서는 모든 집단이 똑같이 충격을 중단할 수 있도록 설정하였습니다. 즉, 개들이 건너편으로 벽을 넘어가기만 하면 충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통제가능한 충격을 받은 1번 집단과 충격을 전혀 받지 않았던 3번 집단의 개들은 2단계에서 재빨리 충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2번 집단에 속한 개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그 개들은 실험자들이 충격을 종료할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실험자들은 스스로 통제가 어려운 충격이 무기력을 학습하게 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개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들이 다른 어떤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고, 그저 포기하고 새로운 상황에 수동적으로 누워만 지낸 것입니다.
셀리그만은 이후 실험에서 무기력한 개들에게 실험 상자 속의 벽도 제거해 보고 건너편 공간으로 가서 그 개를 불러도 보고, 심지어는 충격이 없는 건너편 공간으로 핫도그를 던져서 유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개는 반응하지 않고 충격이 있는 공간에 그냥 누워 있었습니다. 마치 우울증에 빠진 사람처럼, 개는 음식과 놀이를 포함한 여러 행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기력한 개들은 수동적으로 울타리 바닥에 주저앉아 저항하지 않고 복종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어떠한 행동도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3. 부모 자녀 관계에서의 적용
이러한 결과는 인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결국 그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며 무기력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예측 불가능한 반응이 반복되면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자녀는 자신의 행동이 부모의 반응이라는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반응을 예측하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녀의 모든 행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스스로 하는 행동이나 결정에 확신이 없어지며, 주도적이고 긍정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교우 관계나 학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러한 결과가 다시 아이에게 반복해서 영향을 주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체성이 형성되어야 할 시기에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이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추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서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가 예측할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부모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에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서로 숙지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실수로 원칙에서 벗어났을 때는 자녀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함께 나누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녀는 그 행동이 일관된 원칙에서 벗어난 것임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원칙을 가지고 일관되게 노력하면 여러 어려운 습관들도 고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밖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떼를 쓸 때,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면 아이가 더 떼를 쓰며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나중에 그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아이는 그렇게 떼를 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학습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럴 때는 힘들더라도 끝까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자녀가 경험으로 그것을 알게 되면 나중에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무리하게 떼를 쓰는 경우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행동이 예측 가능한 행동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일관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자녀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둘 곳을 예측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됩니다. 그것은 건강한 정체성과 높은 자존감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작은 성공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감이 향상되며 더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선순환이 반복됩니다. 또한 높은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감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더 잘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